고대 이집트의 신전과 무덤을 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다.
사람과 동물, 새와 식물, 눈과 손, 각종 도구와 사물의 모습을 정교하게 표현한 수많은 문자다.
우리는 이것을 흔히 이집트 상형문자(Egyptian hieroglyphs)라고 부른다.
그림처럼 보이기 때문에 각각의 그림이 그대로 하나의 뜻을 나타내는 단순한 그림문자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제 이집트 상형문자는 훨씬 복잡했다.
어떤 기호는 하나의 단어나 개념을 나타냈고, 어떤 기호는 소리를 나타냈다. 또 어떤 기호는 앞에 적힌 단어가 사람인지, 장소인지, 행동인지 등을 알려주는 역할을 했다.
즉, 이집트 상형문자는 그림과 소리, 의미가 함께 작동하는 문자 체계였다.
1. '상형문자'라는 이름은 어디에서 왔을까?
영어 hieroglyph는 고대 이집트어가 아니라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말이다.
그리스어의 hieros는 '신성한'이라는 뜻이고, glyphō 계열의 말은 '새기다, 조각하다'라는 의미와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hieroglyph는 대체로 '신성하게 새긴 문자', '신성한 조각 문자'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이 이름은 그리스인들이 이집트의 신전과 무덤, 석비 등에 새겨진 문자를 바라보며 붙인 이름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자신들의 문자를 그리스어인 hieroglyph라고 부르지 않았다.
이집트어로는 mdw nṯr(medu netjer), 즉 대체로 '신의 말', '신의 말씀'이라는 의미의 표현을 사용했다. 문자와 지식의 발명이 신 토트(Thoth)와 관련되어 있다고 여겼던 이집트인의 종교관도 이 이름에 반영되어 있다.
2. 이집트 문자는 언제 처음 등장했을까?
이집트 문자의 역사는 이집트가 통일 왕국으로 형성되기 직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현재 알려진 초기 이집트 문자의 중요한 자료 가운데 하나는 남부 이집트 아비도스(Abydos)에서 발견되었다.
시카고대학교 이집트학 연구 자료에서는 아비도스의 U-j 무덤에서 발견된 초기 문자 자료를 약 기원전 3320년경으로 설명한다. 대영박물관 역시 이집트에서 문자가 대략 기원전 4천년대 말, 약 기원전 3250년 무렵 등장했다고 설명한다.
초기의 문자는 왕의 이름이나 장소, 물품의 종류와 수량 등을 기록하는 짧은 표기에서 시작했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물품과 세금, 행정 등을 관리해야 할 필요가 커지면서 문자 역시 점차 정교한 체계로 발전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이름과 물건을 기록하는 수준을 넘어 문장과 이야기, 종교 문헌, 행정 기록까지 표현할 수 있는 문자 체계가 되었다.
3. 그림처럼 보이지만 단순한 그림문자는 아니다
이집트 상형문자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점은 이것이다.
보이는 그림과 실제 읽는 방법이 반드시 같지는 않다.
새 그림이 있다고 해서 언제나 '새'라는 뜻인 것도 아니고, 집 그림이 있다고 해서 언제나 '집'을 뜻하는 것도 아니었다.
하나의 기호가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기능을 할 수 있었다.
① 단어나 뜻을 나타내는 기호
어떤 기호는 그림에 나타난 사물이나 그것과 관련된 단어를 직접 나타냈다.
이러한 기호를 보통 로고그램(logogram, 단어기호) 또는 전통적인 설명에서는 표의문자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특정 사물을 그린 기호가 그 사물의 이름 자체를 나타내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 방법만으로는 사람이 사용하는 모든 말을 기록하기 어렵다.
눈으로 그리기 어려운 추상적인 개념도 있고, 문법적인 요소나 수많은 고유명사 역시 표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집트 문자에서는 '그림의 뜻'뿐 아니라 그림의 소리도 활용했다.
② 그림으로 소리를 나타내는 표음기호
이집트 문자에는 특정한 소리를 나타내는 표음기호(phonogram)가 있었다.
하나의 자음을 나타내는 기호도 있었고, 두 자음이나 세 자음의 조합을 나타내는 기호도 있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물의 그림을 그려놓고 그 사물 자체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물의 이집트어 이름에서 가져온 소리를 사용하는 방식이다.
영어로 비유하면 눈(eye) 그림을 그려 놓고 '눈'이라는 뜻이 아니라 I라는 소리를 나타내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이러한 방식을 흔히 리버스 원리(rebus principle)라고 한다.
③ 단어의 종류를 알려주는 한정사
이집트 문자에는 소리로 읽지는 않지만 매우 중요한 기호도 있었다.
바로 한정사(determinative)다.
한정사는 보통 단어 끝에 붙어 그 단어가 어떤 의미 영역에 속하는지를 알려주는 역할을 했다.
사람을 나타내는 기호가 붙을 수도 있고, 동물이나 장소, 움직임, 신체의 일부 등을 나타내는 기호가 붙을 수도 있었다.
이집트 문자가 주로 자음을 중심으로 기록했기 때문에 같은 자음으로 이루어진 서로 다른 단어가 생길 수 있었다.
이때 한정사는 독자가 그 단어의 의미를 구별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따라서 한정사는 일반적으로 발음하는 글자가 아니라 의미를 분류해 주는 표지라고 이해하면 된다.
4. 그렇다면 상형문자는 알파벳일까?
이집트 상형문자에는 하나의 자음만을 나타내는 기호들이 있었다.
이를 단일 자음 기호(uniliteral signs)라고 한다.
약 24개의 기본적인 단일 자음 기호가 있었기 때문에 이것만 보면 현대의 알파벳과 상당히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이집트인들은 이 기호들만 사용해 모든 단어를 철자처럼 적지 않았다.
실제 문장에서는
- 하나의 자음을 나타내는 기호
- 두 자음을 나타내는 기호
- 세 자음을 나타내는 기호
- 하나의 단어를 나타내는 기호
- 의미를 분류하는 한정사
등이 함께 사용되었다.
따라서 이집트 문자 전체를 알파벳이라고 부르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알파벳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었지만, 여러 종류의 기호가 동시에 작동하는 복합적인 문자 체계였다.
5. 왜 고대 이집트어의 정확한 발음을 알기 어려울까?
상형문자와 신관문자, 민중문자로 기록된 고대 이집트어에서는 일반적으로 오늘날의 알파벳처럼 모음을 명확하게 기록하지 않았다.
주로 자음을 중심으로 단어를 적었다.
따라서 어떤 단어의 자음이 남아 있다고 해도 그 사이에 정확히 어떤 모음이 들어갔는지 완벽하게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오늘날 이집트학자들은 편의를 위해 자음 사이에 모음을 넣어 고대 이집트어 단어를 읽는다.
하지만 우리가 책이나 다큐멘터리에서 듣는 고대 이집트 이름의 발음이 반드시 수천 년 전 이집트인이 실제로 사용했던 발음과 똑같다는 뜻은 아니다.
후대의 콥트어(Coptic)와 그리스어 등에 기록된 이집트 이름, 다른 언어로 옮겨 적힌 자료 등을 비교하면서 고대 발음을 추정할 수 있지만, 특히 오래된 시대의 모음까지 완벽하게 복원하는 것은 어렵다.
6. 상형문자는 어느 방향으로 읽었을까?
이집트 상형문자에는 현대 한글이나 영어처럼 한 가지로 고정된 읽기 방향이 없었다.
가로로 쓰기도 하고 세로로 쓰기도 했으며,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기도 하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기도 했다.
다만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는 배열이 매우 흔했다.
읽는 방향을 찾는 방법도 흥미롭다.
사람이나 새, 동물처럼 얼굴이 있는 기호를 보면 된다.
기호들이 오른쪽을 바라보고 있다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고, 왼쪽을 바라보고 있다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는다.
즉, 사람과 동물이 바라보는 방향에서 글을 읽기 시작하면 된다.
상형문자는 글이면서 동시에 건축과 미술의 일부였기 때문에 주변의 인물이나 장면과 조화를 이루도록 글자의 방향이 바뀌기도 했다.
이러한 점도 현대 문자와 상당히 다른 특징이다.
7. 모든 이집트인이 돌에 상형문자를 새긴 것은 아니다
우리가 고대 이집트 문자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은 신전이나 무덤 벽에 정교하게 새겨진 상형문자다.
하지만 고대 이집트인이 언제나 이런 형태로 글을 쓴 것은 아니다.
같은 이집트어를 기록하면서도 시대와 목적, 기록 재료에 따라 서로 다른 문자 형태를 사용했다.
상형문자(Hieroglyphic)
정교한 상형문자는 신전과 무덤, 석비, 왕의 기념물과 같은 공식적이고 종교적인 공간에서 많이 사용되었다.
돌에 새기거나 색을 칠하기도 했기 때문에 문자 자체가 미술의 일부처럼 보인다.
하지만 상형문자가 반드시 돌에만 사용된 것은 아니다. 목재나 파피루스 등에 쓰인 사례도 있었으며, 보다 간략하게 그린 형태의 상형문자도 존재했다.
신관문자(Hieratic)
일상적인 기록을 매번 정교한 그림 형태로 그리는 것은 매우 비효율적이었다.
그래서 상형문자의 형태를 빠르게 쓸 수 있도록 단순화한 필기체가 발달했다.
이것이 신관문자(Hieratic)다.
신관문자는 이미 이집트 문명의 매우 이른 시기부터 발전했으며, 파피루스나 도자기 조각 등에 붓이나 갈대 펜과 잉크로 쓰기에 적합했다.
편지와 회계 장부, 행정 기록, 문학 작품과 종교 문서 등 다양한 기록에 사용되었다.
민중문자(Demotic)
기원전 7세기 무렵에는 더욱 빠르고 간략한 형태의 민중문자(Demotic)가 등장했다.
Demotic이라는 이름은 '민중의, 대중적인'이라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다.
처음에는 편지와 계약서, 행정·법률·회계와 같은 실용적인 기록에 많이 사용되었지만, 이후에는 문학과 역사, 종교 문헌에도 사용 범위가 넓어졌다.
민중문자는 신관문자에서 발전한 문자 체계로, 기호의 형태가 크게 간략화되어 원래 상형문자의 그림을 알아보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콥트 문자(Coptic)
로마 시대와 초기 기독교 시대에 접어들면서 이집트어를 기록하는 또 다른 방법이 등장했다.
바로 콥트 문자다.
콥트어는 고대 이집트어와 완전히 별개의 외국어가 아니라 오랜 세월 변화해 온 이집트어의 마지막 단계다.
다만 문자 체계가 달라졌다.
콥트 문자는 주로 그리스 알파벳을 바탕으로 하고, 그리스 문자로 표현할 수 없는 이집트어의 소리를 기록하기 위해 민중문자에서 유래한 몇몇 글자를 추가했다.
또한 이전의 이집트 문자와 달리 모음을 훨씬 분명하게 기록했기 때문에 훗날 고대 이집트어의 발음을 연구하는 데도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8. 상형문자는 왜 읽는 법을 잃어버렸을까?
상형문자는 약 3천 년 이상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집트를 둘러싼 정치와 종교, 언어 환경이 변화하면서 전통적인 문자 체계 역시 점차 사용 범위를 잃어갔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정복 이후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들어서면서 그리스어가 행정과 지배층의 중요한 언어로 사용되기 시작했고, 로마 시대에도 이러한 다언어 환경이 이어졌다.
한편 이집트 내부에서는 민중문자와 이후 콥트 문자가 함께 사용되었다.
특히 기독교가 널리 확산되면서 고대 이집트의 전통 종교와 신전, 그 문자 지식을 유지하던 사제 집단의 역할이 점차 약해졌다. 그리스어와 콥트어가 확대되는 동안 상형문자를 읽고 쓰는 전통은 점점 좁은 영역에 남게 되었다.
현재 알려진 마지막 날짜가 확인되는 상형문자 비문은 서기 394년 필레(Philae) 신전에 남겨진 글이다.
그 뒤 상형문자를 읽고 쓰던 전통은 사실상 끊어졌다.
돌과 신전 벽에는 수많은 글자가 그대로 남아 있었지만, 사람들이 그것을 읽는 방법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상형문자는 오랫동안 의미를 알 수 없는 신비한 그림처럼 남아 있었다.
9. 로제타 스톤이 발견되다
상형문자를 다시 읽을 수 있게 만드는 결정적인 단서가 나타난 것은 1799년이었다.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에 참여했던 프랑스군 병사들이 이집트 북부의 라시드(Rashid, 유럽에서 Rosetta라고 부르던 도시) 인근에서 요새 공사를 하다가 비석 조각 하나를 발견했다.
오늘날의 로제타 스톤(Rosetta Stone)이다.
로제타 스톤은 흔히 검은 돌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화강섬록암(granodiorite)으로 이루어진 고대 비석의 일부다.
비석에는 기원전 196년, 프톨레마이오스 5세의 통치와 왕실 숭배에 관한 사제들의 칙령이 기록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같은 칙령이 세 가지 문자로 기록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상단 : 이집트 상형문자
중단 : 이집트 민중문자(Demotic)
하단 : 고대 그리스 문자
여기에서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이것을 흔히 '세 언어로 쓰였다'고 표현하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세 문자 체계로 기록된 두 언어에 가깝다.
상형문자와 민중문자는 모두 이집트어를 기록한 것이고, 아래 부분은 그리스어였다.
고대 그리스어는 당시 유럽 학자들이 이미 읽을 수 있었기 때문에 로제타 스톤은 이집트 문자 해독을 위한 거대한 비교 자료가 되었다.
10. 카르투슈와 왕의 이름
해독 과정에서 중요한 단서가 된 것 중 하나가 카르투슈(cartouche)였다.
카르투슈는 왕이나 왕비의 이름을 둘러싸는 길쭉한 타원 형태의 테두리다.
학자들은 로제타 스톤의 그리스어 부분에 등장하는 프톨레마이오스(Ptolemy)라는 이름과 상형문자에 등장하는 카르투슈를 비교했다.
만약 그 안에 적힌 기호가 프톨레마이오스라는 이름을 나타내는 것이라면, 적어도 일부 상형문자는 단순한 그림의 의미가 아니라 이름의 소리를 표현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 연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학자가 영국의 토머스 영(Thomas Young)이었다.
대영박물관은 영을 로제타 스톤의 일부 상형문자가 왕의 이름인 프톨레마이오스의 소리를 기록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보여준 학자 가운데 핵심 인물로 설명한다.
그러나 당시에는 표음적인 원리가 외국 왕의 이름과 같은 특별한 경우에만 사용된 것인지, 아니면 이집트 문자 전체의 기본 원리 가운데 하나인지가 분명하지 않았다.
11. 샹폴리옹은 무엇을 밝혀냈을까?
결정적인 전환점을 만든 사람은 프랑스의 언어학자 장프랑수아 샹폴리옹(Jean-François Champollion)이었다.
샹폴리옹에게 특히 중요한 언어가 콥트어(Coptic)였다.
콥트어가 고대 이집트어에서 이어진 언어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상형문자의 소리와 실제 이집트어 단어 사이의 관계를 추적할 수 있었다. 현대 이집트학에서도 콥트어는 고대 이집트어를 이해하는 핵심 자료로 사용된다.
샹폴리옹은 프톨레마이오스와 클레오파트라 같은 그리스계 왕실의 이름뿐 아니라 더 오래된 이집트 파라오의 이름에도 자신의 해독 원리를 적용했다.
그 과정에서 상형문자의 표음 기능이 외국 이름을 기록할 때만 사용된 특별한 방법이 아니라 이집트어 자체를 기록하는 문자 체계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1822년 샹폴리옹은 자신의 연구를 정리한 유명한 「다시에에게 보내는 편지(Lettre à M. Dacier)」를 발표했다.
이 발표는 오늘날 이집트 상형문자 해독의 결정적인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그렇다고 샹폴리옹 혼자 어느 날 갑자기 상형문자를 모두 풀어낸 것은 아니다.
로제타 스톤의 발견과 토머스 영을 비롯한 여러 학자의 연구, 콥트어 연구, 다양한 이중언어·다중언어 비문에 대한 비교가 축적된 결과였다.
샹폴리옹의 가장 큰 공헌은 이러한 단서들을 결합해 상형문자가 소리와 의미를 함께 사용하는 하나의 언어 기록 체계라는 원리를 체계적으로 밝혀냈다는 데 있다.
12. 상형문자를 읽게 되면서 무엇이 달라졌을까?
상형문자의 해독은 단순히 오래된 문자를 읽을 수 있게 된 사건이 아니었다.
그전까지 고대 이집트에 대한 지식은 그리스·로마 작가들의 기록이나 성서, 후대의 전승과 고고학적 유물을 통해 제한적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상형문자를 비롯한 고대 이집트 문자를 읽을 수 있게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왕의 즉위와 전쟁 기록,
신들에게 바치는 찬양과 기도,
신화와 장례 의식,
토지와 세금 기록,
재판과 계약,
개인의 편지,
사랑의 시와 문학 작품,
심지어 장부와 물품 목록까지
고대 이집트인들이 직접 남긴 수많은 기록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다른 문명이 고대 이집트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를 넘어, 고대 이집트인이 자신과 자신의 세계를 어떻게 기록했는지를 직접 연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이 현대 이집트학이 발전하는 데 결정적인 토대가 되었다.
13. 그렇다면 오늘날 이집트에서는 어떤 언어를 사용할까?
고대 이집트어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고 곧바로 아랍어로 바뀐 것은 아니다.
수천 년 동안 이집트어는 계속 변화했다.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고대 이집트어의 역사를 고대 이집트어(Old Egyptian), 중기 이집트어(Middle Egyptian), 후기 이집트어(Late Egyptian), 민중어 단계(Demotic), 콥트어(Coptic) 등의 단계로 구분한다.
7세기 이집트가 아랍 세력의 지배 아래 들어간 뒤에는 아랍어의 사용이 점차 확대되었다.
그러나 콥트어가 즉시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랜 기간 아랍어와 함께 사용되다가 여러 세기에 걸쳐 점차 일상 언어로서의 역할을 잃었다.
오늘날 이집트의 공식 언어는 아랍어다. 일상 대화에서는 이집트에서 발달한 구어 아랍어가 널리 사용된다.
고대 이집트어의 마지막 단계인 콥트어는 오늘날 일반적인 일상 언어로 사용되지는 않지만 콥트 교회의 전례 언어로 남아 있다.
따라서 오늘날의 아랍어와 고대 이집트어가 같은 언어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고대 이집트어 역시 완전히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 마지막 단계인 콥트어가 종교와 문헌 속에 남아 있고, 바로 그 콥트어가 19세기 상형문자 해독의 중요한 열쇠가 되었다.
14. 다른 문명에도 상형문자가 있었을까?
사람이나 동물, 사물의 모습을 본뜬 기호를 이용한 문자는 이집트에만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상형문자’는 하나의 문자 계통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이집트 상형문자, 크레타 상형문자, 마야 문자처럼 실제로 ‘hieroglyphic’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문자도 있지만, 수메르의 초기 문자나 중국의 갑골문처럼 그림에서 출발한 특징을 가지고 있어도 오늘날 학계에서는 보통 상형문자라고 분류하지 않는 문자도 있다.
따라서 아래에서는 이집트 상형문자와 비교할 만한 그림형 기호를 사용한 고대 문자 체계를 등장 시기 순으로 살펴본다.
① 메소포타미아의 초기 문자 — 약 기원전 3300년경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약 기원전 3300년경부터 진흙판에 물건이나 수량을 나타내는 그림 형태의 기호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이를 오늘날 원시 쐐기문자(Proto-cuneiform)라고 부른다. 초기에는 사람이나 동물, 물품 등을 알아볼 수 있는 그림에 가까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기호가 점차 단순해지고 추상화되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쐐기 모양의 쐐기문자(cuneiform)로 발전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약 기원전 3300년의 초기 문자가 그림기호와 숫자를 사용해 경제 정보를 기록했다고 설명한다.
엄밀하게 말하면 이것을 보통 ‘상형문자’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림에서 출발해 실제 언어를 기록하는 문자로 발전했다는 점에서 이집트 문자와 비교하기 좋은 사례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 초기 메소포타미아 문자와 쐐기문자]
② 이집트 상형문자 — 약 기원전 3250년경
이집트 상형문자는 약 기원전 3250년경 등장했다.
대영박물관은 수메르 문자와 이집트 문자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자 체계 가운데 하나로 설명하며, 이집트에서는 약 기원전 3250년경 문자가 등장한 것으로 본다. 초기에는 물품과 행정 정보를 기록하는 데 사용되었고 이후 종교, 왕권, 문학, 행정 등 매우 다양한 내용을 기록하는 문자로 발전했다.
특히 이집트 상형문자는 그림 형태를 오랫동안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단어를 나타내는 기호, 소리를 나타내는 기호, 의미를 구별해 주는 한정사를 함께 사용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대영박물관 — Egyptian Hieroglyphs]
③ 크레타 상형문자 — 약 기원전 2000~1600년경
청동기 시대 크레타섬에서도 그림처럼 생긴 기호를 이용한 크레타 상형문자(Cretan Hieroglyphic)가 등장했다.
케임브리지대학교 연구에 따르면 관련 자료는 대략 기원전 2000/1900년경부터 1700/1600년경에 걸쳐 나타나며, 유럽에서 확인된 가장 이른 문자 체계 가운데 하나다.
사람이나 동물, 사물을 닮은 기호가 많기 때문에 ‘상형문자’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이집트 상형문자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문자는 아니다. 현재까지도 기록된 언어가 무엇이었는지 완전히 해독되지 않았다.
[이라클리온 고고학박물관 — 크레타 상형문자가 새겨진 점토 원판]
④ 아나톨리아·루위 상형문자 — 기원전 16세기경 이후
현재의 튀르키예를 중심으로 한 고대 아나톨리아 지역에서도 독자적인 그림형 문자가 사용되었다.
보통 아나톨리아 상형문자(Anatolian Hieroglyphs) 또는 루위 상형문자(Luwian Hieroglyphs)라고 부른다.
상형 기호 자체는 히타이트 시대의 인장 등에 기원전 1600년경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본격적인 문장 형태의 기록은 주로 기원전 14~13세기 이후에 나타난다. 이후 기원전 1천년대에도 아나톨리아 남부와 시리아 북부에서 계속 사용되었다.
이 문자 역시 이집트 상형문자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아나톨리아에서 독자적으로 발달한 문자로 본다. 단어를 나타내는 기호와 음절을 나타내는 기호가 함께 사용되었다.
[대영박물관 — 루위·아나톨리아 상형문자가 새겨진 부조 보기]
⑤ 중국의 갑골문 — 기원전 14세기 말~13세기경
중국의 갑골문(甲骨文, oracle bone script)은 상나라 시대에 거북의 배딱지나 소의 어깨뼈 등에 새긴 문자다.
현존하는 중국 문자 자료 가운데 가장 오래된 본격적인 문자 체계로, 대략 기원전 14세기 말 이후, 특히 기원전 13~11세기의 자료가 많이 남아 있다. 왕실에서는 전쟁, 날씨, 농사, 제사, 출산 등 여러 문제를 점친 뒤 그 내용을 뼈에 기록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중국의 초기 문자가 늦어도 기원전 14세기 말부터 갑골에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갑골문에는 사람, 해, 달, 나무, 동물 등 실제 사물의 모습을 본뜬 글자가 많다.
하지만 갑골문 전체를 단순한 상형문자라고 보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이 시기에는 이미 사물의 모습을 본뜬 글자뿐 아니라 여러 원리를 이용해 만들어진 문자들이 존재했으며, 이후 중국 한자로 이어지는 상당히 발달한 문자 체계였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The Met) — 상나라 시대 갑골문이 새겨진 뼈 조각]
⑥ 마야 문자 — 늦어도 기원전 300~200년경
중앙아메리카의 마야 문명에서도 매우 정교한 그림형 문자 체계가 발달했다.
과테말라의 산바르톨로(San Bartolo)에서는 기원전 300~200년경으로 추정되는 초기 마야 문자와 달력 기호가 발견되었다. 이후 마야 고전기에는 왕의 역사와 전쟁, 혈통, 종교, 달력 등을 기록한 수많은 비문이 만들어졌다.
마야 문자는 겉으로 보면 복잡한 그림의 집합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단어 전체를 나타내는 기호와 음절을 나타내는 기호를 함께 사용하는 로고음절문자(logosyllabic script)였다. 현재 상당 부분 해독되어 실제 마야어 문장을 읽을 수 있다.
이집트 상형문자와 마찬가지로 그림의 모양을 그대로 뜻으로만 읽는 문자가 아니었다는 점에서 특히 좋은 비교 대상이다.
[마야 문자가 새겨진 실제 유물 보기 — Smithsonian NMAI]
한눈에 보는 등장 시기
대략적인 흐름만 놓고 보면 다음과 같다.
기원전 3300년경 — 메소포타미아 원시 쐐기문자
기원전 3250년경 — 이집트 상형문자
기원전 2000~1900년경 — 크레타 상형문자의 초기 단계
기원전 1600년경 이후 — 아나톨리아·루위 상형문자의 초기 자료
기원전 14세기 말~13세기 — 중국 갑골문
기원전 300~200년경까지 확인되는 초기 자료 — 마야 문자
단, 이 연대는 각각 현재 발견되어 있는 자료를 기준으로 한 대략적인 시기이므로 새로운 유물이 발견되면 앞당겨질 가능성도 있다.
15. 그렇다면 이집트 상형문자는 무엇이 특별할까?
이집트 상형문자만 그림을 사용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집트 상형문자의 두드러진 특징은 그림의 형태를 매우 오랫동안 유지하면서 실제 언어를 정교하게 기록했다는 데 있다.
약 기원전 3250년경 시작된 이 문자에서는 단어를 나타내는 기호와 하나·둘·세 개의 자음을 나타내는 표음기호, 의미를 보충하는 한정사가 함께 사용되었다. 그리고 같은 문자 체계가 신전과 무덤의 부조, 석비, 파피루스 등에서 3천 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이어졌다.
또 다른 특징은 문자와 미술이 거의 분리되지 않을 정도로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새와 사람, 동물, 식물의 모습을 매우 구체적으로 유지했기 때문에 수천 년 뒤의 우리가 보아도 무엇을 그린 것인지 상당 부분 알아볼 수 있다. 그러면서도 그 그림은 장식에 머무르지 않고 소리와 단어, 문법적 의미를 전달하는 실제 문자였다.
따라서 이집트 상형문자의 특별함은 단순히 ‘그림으로 만든 오래된 문자’라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림·소리·의미·미술이 하나의 체계 안에서 결합된 문자를 수천 년 동안 유지했다는 데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