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새는 왜 폴리(Polly)라고 불릴까?|이름의 유래와 크래커, 해적 이야기

황금빛 노을의 바다를 배경으로, 해적선 위에 앉아 있는 앵무새의 모습


《Magic Tree House》4권 'Pirates Past Noon'에서 애니는 말을 하는 초록색 앵무새를 발견하고 이렇게 묻는다.

“A talking parrot! Is your name Polly? Can I call you Polly?”
(“말하는 앵무새잖아! 네 이름이 폴리니? 널 폴리라고 불러도 될까?”)

애니는 앵무새의 이름을 알지도 못하면서 자연스럽게 Polly라는 이름을 떠올린다. 왜 하필 Polly일까?

영어권에서 Polly(폴리)는 오랫동안 앵무새의 전형적인 이름으로 사용되어 왔다. 실제 이름이 무엇이든 앵무새를 보면 Polly라고 부르거나 말을 거는 일이 있을 정도로 익숙한 이름이다.

이러한 관습은 수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사람의 이름에서 시작해 문학과 대중문화 속에서 하나의 전형적인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


1. Polly는 원래 사람의 이름이었다

Polly는 본래 여성 이름인 Mary(메리)에서 발전한 애칭이다. Mary에서 Molly(몰리)라는 애칭이 생겨났고, Molly와 운율을 맞추는 방식으로 Polly라는 이름이 형성되었다.

이처럼 비슷한 소리의 첫 자음을 바꾸어 새로운 애칭을 만드는 방식을 영어에서는 운율형 애칭(rhyming nickname)이라고 한다.

영어 어원 사전 Online Etymology Dictionary는 Polly를 Molly에서 유래한 운율형 애칭으로 설명하며, 앵무새의 이름으로 사용된 기록을 161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추적한다.

즉, Polly는 처음부터 앵무새를 위해 만들어진 이름이 아니다. 원래 사람에게 사용하던 친근한 이름이었으며, Poll이라는 형태와 함께 앵무새를 부르는 관습적인 이름으로 자리 잡았다.

Online Etymology Dictionary|Polly의 어원과 앵무새 이름으로 사용된 역사


2. 앵무새를 Polly라고 부르는 관습은 언제 시작되었을까?

앵무새를 Poll 또는 Polly라고 부르는 관습은 적어도 17세기 초부터 확인된다.

옥스퍼드 영어 사전(Oxford English Dictionary)이 제시하는 초기 용례 가운데 하나는 영국 극작가 벤 존슨(Ben Jonson)의 1600년 작품 《Every Man Out of His Humour》에 등장하는 Poll이라는 이름이다.

이후에도 Poll과 Polly는 앵무새의 이름으로 계속 사용되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대니얼 디포(Daniel Defoe)가 1719년에 발표한 소설 《로빈슨 크루소(Robinson Crusoe)》다.

작품에서 로빈슨 크루소는 무인도에서 잡은 앵무새를 길들이고, 그에게 사람의 말을 가르친다. 이 앵무새의 이름은 Poll(폴)이다. 크루소는 앵무새에게 자기 이름을 가르치고, 앵무새는 점차 다른 말들도 따라 하게 된다.

어느 날 크루소는 잠을 자다가 누군가 자기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깨어난다. 섬에 다른 사람이 나타난 줄 알고 크게 놀라지만, 알고 보니 자신이 가르쳤던 말을 앵무새 Poll이 반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18세기 초의 유명한 문학 작품에서도 Poll이라는 이름은 사람의 말을 따라 하는 앵무새와 연결되어 있었다. 다만 이 관습이 《로빈슨 크루소》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다. 앵무새를 Poll이라고 부르는 기록은 작품이 출간되기 약 100년 전부터 확인된다.

Project Gutenberg|《Robinson Crusoe》 영어 원문과 앵무새 Poll


3. Polly wants a cracker는 무슨 뜻이고 왜 유명할까? 

“Polly wants a cracker.”는 특별한 숨은 뜻을 가진 관용구가 아니다. 영어권에서 말하는 앵무새를 떠올릴 때 전형적으로 연상하는 문구다. 쉽게 말하면 영어권 문화에서 앵무새가 흔히 하는 말로 알려진 일종의 상투적인 대사(cliché)이다.


무슨 의미일까?

Polly wants a cracker.
(폴리는 크래커를 원해.)

말 그대로 폴리라는 이름의 앵무새가 과자를 먹고 싶어 한다는 뜻이다. 더 널리 알려진 형태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Polly, want a cracker?
(폴리, 크래커 먹을래?)

사람이 앵무새에게 말을 거는 표현이다. 앵무새는 사람의 말을 흉내 낼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앵무새에게 이런 짧은 문장을 반복해서 가르치거나 말을 걸던 모습과 연결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말 자체가 '말하는 앵무새'를 상징하는 전형적인 문구로 굳어졌다.


그런데 왜 유명해졌을까?

핵심은 이 표현이 오랫동안 반복되고, 농담과 풍자에 등장하면서 영어권 사람들이 익숙하게 알아듣는 말이 되었다는 것이다.

실제 사례가 있다. 2009년 미국의 언어 전문 라디오 프로그램 A Way with Words에 앵무새를 기르는 청취자가 사연을 보냈다.

그의 앵무새 이름은 폴리가 아니라 알렉산더 해밀턴(Alexander Hamilton)이었다. 그런데도 지나가는 사람들이 앵무새를 보기만 하면 거의 예외 없이 다음과 같이 말을 걸었다고 한다.

Polly, want a cracker? 앵무새의 실제 이름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이런 말을 건넨 것이다. 바로 이것이 이 표현의 문화적 특징이다. Polly와 크래커를 연결하는 표현이 영어권에서 얼마나 익숙한 문화적 관습인지를 보여 준다.

A Way with Words|‘Polly Wanna Cracker’의 의미와 1848~1849년 초기 기록


그렇다면 이 문구는 언제부터 사용되었을까?


1848년|풍자 잡지 《The John-Donkey》

현재 확인된 초기 자료 중 하나는 1848년 7월 29일 발행된 미국의 풍자 잡지 《The John-Donkey》에 실린 만화다.

만화에는 한 소년이 막대기를 들고 앵무새를 때리려는 모습이 등장하며, 다음 문구가 붙어 있다.

Polly, want a cracker?

이 장면은 크래커라는 과자와 '때리다', '세게 치다'라는 의미의 영어 동사 crack을 연결한 말장난으로 해석된다. 앵무새에게 과자를 권하는 친숙한 문구를 다른 의미로 비틀어 농담을 만든 것이다.

이러한 말장난이 잡지에 실렸다는 사실은 당시 독자들이 앵무새와 크래커를 연결하는 표현에 이미 익숙했을 가능성을 보여 준다.


1849년|잡지 《The Knickerbocker》

이듬해인 1849년에는 미국 잡지 《The Knickerbocker》에 실린 풍자적인 가상 신문 광고에도 비슷한 표현이 등장한다.

광고는 사람의 말을 할 줄 아는 앵무새를 판매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앵무새는 불이 났다고 외치거나 상대방에게 욕설을 하는 등 여러 가지 말을 할 줄 알았는데, 그중 하나가 다음 표현이었다.

Polly want a cracker.

앵무새가 선장과 함께 지내면서 지나치게 거친 말까지 배우게 되었다는 설정도 등장한다.

이처럼 1840년대 말에는 이미 앵무새의 전형적인 말 가운데 하나로 Polly와 크래커를 연결하는 문구가 사용되고 있었다. 다만 이 자료들이 표현의 최초 사용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정확히 언제, 누가 이 표현을 처음 사용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4. 그런데 왜 하필 크래커일까?

앵무새에게 이름을 부르거나 말을 가르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수많은 음식 가운데 하필 크래커가 등장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정확한 역사적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설명은 두 가지다.

하나는 긴 항해를 하는 선원들이 보관하기 쉬운 크래커나 비스킷을 배에 싣고 다녔고, 함께 데리고 다니던 앵무새에게도 이를 먹였다는 설명이다.

다른 하나는 앵무새를 기르는 사람들이 크래커를 간식으로 주면서 관련 표현을 반복해 가르쳤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 두 설명 모두 해당 문구가 처음 생겨난 원인으로 입증된 것은 아니다.

언어학자 아널드 즈위키(Arnold Zwicky)는 2021년 자신의 글에서 이러한 문제를 살펴보았다.

그는 앵무새의 일반적인 먹이로 씨앗, 견과류, 과일 등이 있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앵무새가 특별히 크래커를 원했기 때문에 이 표현이 생겼다는 설명에는 확실한 근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사람들이 앵무새에게 특정한 문장을 가르치는 관습이 유행하면서 이 표현이 널리 퍼졌을 수도 있다.

따라서 Polly와 크래커가 연결된 정확한 계기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19세기 중반에는 그 문구가 앵무새를 상징하는 익숙한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었다는 사실은 확인할 수 있다.

Arnold Zwicky's Blog|‘Polly Wanna Cracker’의 역사와 크래커가 등장한 이유에 대한 검토


5. 해적 이야기에는 왜 앵무새가 자주 등장할까?

해적이라고 하면 한쪽 눈에 안대를 하고, 어깨에는 앵무새를 올린 모습을 흔히 떠올린다. 그런데 실제 해적들도 앵무새를 키웠을까? 이러한 이미지가 형성된 배경에는 실제 해상 무역의 역사와 문학 작품의 영향이 함께 존재한다.


실제 해적들도 앵무새를 데리고 다녔을까?

17~18세기 카리브해는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을 연결하는 주요 무역 항로이자 해적들의 활동 무대였다. 당시 유럽에서는 화려한 깃털을 가졌고 사람의 말을 흉내 낼 수 있는 앵무새가 이국적인 애완동물로 인기를 얻었다.

앵무새는 거래 가치가 있는 동물이었고, 유럽으로 향하는 배에 실려 운송되기도 했다. 해적들은 이러한 무역 항로를 따라 이동하며 선박의 화물을 약탈했다. 앵무새와 같은 동물도 그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물품이었다.

앵무새는 배에서 비교적 적은 공간을 차지했고, 긴 항해 동안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도 있었다. 영국 왕립 그리니치 박물관(Royal Museums Greenwich)은 실제 해적들도 때때로 앵무새를 데리고 다녔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해적과 앵무새의 관계가 전적으로 허구에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다만 모든 해적이 앵무새를 길렀거나, 어깨에 앵무새를 올리는 것이 보편적인 해적의 관습이었다고 볼 근거는 없다.

Royal Museums Greenwich|실제 해적들이 앵무새를 데리고 다닌 이유


해적과 앵무새의 이미지를 대중화한 《보물섬》

오늘날 우리가 익숙하게 떠올리는 해적과 앵무새의 이미지는 문학과 대중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대표적인 작품이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이 1883년 단행본으로 출간한 소설 《보물섬(Treasure Island)》이다.

이 작품에는 해적 존 실버(Long John Silver)가 기르는 앵무새가 등장한다. 그런데 이 앵무새의 이름은 Polly가 아니라 Captain Flint(플린트 선장)다.

존 실버는 과거의 유명한 해적 선장의 이름을 따서 자신의 앵무새에게 그 이름을 붙였다. 작품 속 앵무새는 존 실버의 어깨에 앉아 있기도 하며, 다음과 같은 말을 반복한다.

Pieces of eight!
(8레알 은화!)

이는 당시 널리 유통되던 스페인의 8레알 은화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이 은화는 스페인 달러(Spanish dollar) 또는 피스 오브 에이트(piece of eight)라고도 불렸다.

앵무새가 보물과 돈을 연상시키는 말을 반복한다는 점에서 해적 이야기의 분위기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 준다. 《보물섬》이 널리 읽히고 삽화와 영화 등으로 재현되면서, 어깨에 앵무새를 올린 해적의 모습은 대중문화 속에서 널리 알려진 이미지가 되었다.

즉, 해적들이 앵무새를 데리고 다녔던 역사적 배경은 실제로 존재하지만, 오늘날의 전형적인 해적 이미지는 《보물섬》과 이후의 대중문화에 의해 크게 강화된 것이다.

참고로 Polly라는 이름과 크래커에 관한 표현은 《보물섬》이 출간되기 전부터 사용되고 있었다. 따라서 《보물섬》에서 이러한 이름이나 문구가 시작된 것은 아니다.

Project Gutenberg|《Treasure Island》 원문과 존 실버의 앵무새 Captain Flint

Smithsonian National Museum of American History|해적 이야기 속 8레알 은화(Piece of Eight)


다시 원서로 돌아가면

애니는 앵무새의 이름을 알지 못하지만 자연스럽게 Polly라는 이름을 떠올린다. 영어권에서 Polly는 수백 년 동안 앵무새의 이름으로 사용되어 왔으며, 사람의 말을 따라 하는 앵무새를 상징하는 익숙한 문구와도 연결되어 있다.

여기에 이번 이야기의 주제인 해적과 앵무새의 오랜 문화적 관계까지 더해진다. 따라서 애니가 앵무새를 Polly라고 부르는 장면은 영어권 독자에게 낯선 이름을 임의로 붙이는 상황이라기보다, 오래전부터 문학과 대중문화 속에 등장해 온 친숙한 앵무새의 이름을 떠올리는 장면으로 이해할 수 있다.